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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이를 위한 10년 플랜

by kultar 2023. 1. 27.

1. 나를 닮은 붕어빵

 

"인생은 마치 어두운 밤에 낙하산 하나만 짊어지고 적진에 뛰어내린 것 같아서, 너는 처음에 내가 누구인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게 옳은지 알지 못해. 하지만 결국에는 알게 될 거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즐거운 여행이라는 사실을."

 

마치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일 것 같지만 사실은 제가 창작한 문구입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HBO의 유명한 드라마의 시작부를 보면 군인들이 캄캄한 밤에 적진으로 강하해서 캠프로 하나둘씩 집결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밤을 새워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인생이 마치 그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어떤 환경에 놓일지 알지 못하고, 태어난 지 한참 지나서도 정말 내 장단점이나 적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커서 무엇이 될지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즐거운 여정이라는 (나름대로 놀라운) 통찰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얻은 깨달음을 제가 쓴 책자의 첫 표지에 넣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요. 자녀를 낳은 사람은 알겠지만 자녀는 보통 부모를 일정 부분 닮습니다. 외모 뿐 아니라 성격과 습관까지도 닮습니다. 좋은 부분, 우수한 부분만 닮으면 좋겠는데 어느 순간 보면 정말 닮지 말았으면 하는 엄마나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짠하면서 짜증도 납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모르는 나의 단점을 자녀의 모습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합니다. 엄마 몰래 숨어서 핸드폰 게임을 소리를 죽여 놓고 하는 아이 모습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소심하게 행동할까" 했는데 정작 나 자신이 사람 많은 곳에서는 전화도 잘 못 받고 지하철에서 유튜브도 잘 못 보는 소심한 성격이었던 것입니다.

2. 아이를 위한 10년 플랜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문득 내가 만약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다 폭넓게 친구들을 사귈 것이고,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것이고,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어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할 것이고, 탁구나 수영 등 운동도 배워 놓을 것입니다. 악기도 하나 다루면 좋을 것 같고. 어차피 평생 써먹는 게 아니겠는가? 등등 다양하고 잡다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왜 여태 그렇게 못했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외국어 잘하고 탁구 잘 치면 좋다는 것을 몰라서 못했을까요? 사람 많이 사귀면 좋다는 것을 몰라서 못 했을까요? 운동신경이 나도 원래 좀 둔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죠. 돌이켜보건대 나의 아버지는 나의 그런 소극적인 성격을 싫어하셨습니다. 나 역시 내가 지금 아이에게 그러듯이 태권도장에라도 보내서 자신감을 좀 키워주려고 하였으나, 어릴 적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가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축소 확대로 지금 어른인 내 입장에서 아들이 처한 환경이 아주 쉬워 보여도 아들에게는 마치 정글 같을 것입니다. 또 지금 내 입장에서 정답이라고 가르친 것들이 아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10년 후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Prepare to Die

게임 중에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설의 게임이 있습니다. 일본 FROMSOFT의 소울 시리즈 게임들로, '다크소울', '블러드 본' 등의 게임입니다. 주인공이 황폐화된 성이나 마을에서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게임의 캐치프레이즈가 "Prepare to die", 죽을 준비나 하라는 것입니다. 어찌나 많이 죽는지 캐릭터가 죽었을 때 뜨는 메시지인 "You Died"를 한글로 애칭 화하여 "유다희", "유다희 양을 만났다"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잡몹들의 칼질 한두 번에 죽고 나면 왜 다크소울, 다크소울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들이 정말 열광하며 달려든다는 점입니다. 게임의 최고 장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아까 죽은 장소라고 해도 이미 가본 장소를 무한 반복해서 도전하다 보면 더 잘할 수밖에 없고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게 됩니다. 100200번 같은 장소에서 도전하다 보면 아까는 무섭던 괴물도 이제는 반갑습니다. 소위 '고인물'이 된 것입니다. 어떤 게임 유튜버는 정말로 천 번 정도 시도를 해서 보스를 잡고 감격해서 울기까지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4. 결국 누군가 한 번은 극복해야 된다.

 

어려운 게임이 할수록 쉬워지는 이유는 죽더라도 경험과 스킬을 가진 채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에서 겪는 '현재'가 쉬워진 이유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든 것은 언제나 처음 겪는 일들 투성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현재 가진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인생이 굉장히 쉬울 것입니다. 그런 콘셉트가 요즘 웹소설,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회귀' 콘셉트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부모의 장단점을 상당 부분 닮고, 나와 같은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내 아이는 게임 캐릭터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이야기했듯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닌 '유전자'이고 유전자가 기계인 우리 몸을 타고 대대손손 그렇게 무한히 게임을 반복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경험, 지식, 조언은 적어도 내 아이에게, 내 후손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단점, 특히 내가 극복하지 못한 단점은 어쩌면 내 인생 최대의 숙제 혹은 가문의 오랜 숙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집안에 유전되는 병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시듯이 아이도 나와 비슷한 난관에 곧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 단점이나 모순을 극복해 본 사람만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집안의 숙제처럼 대대손손 물리게 될 것입니다. 단점을 극복하지 못한 내가 아이에게 하는 조언은 그저 쓰레기 같은 말, 일반론 그리고 잔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를 보면서 나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아이가 자라 나와 비슷한 모순을 겪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려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내가 부자라면 조상 중에 누군가 한 번은 리스크를 지고 사업을 해서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고 반대로 내가 가난한 것은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극복하지 못한 단점은 어차피 누군가 한 번은 극복해야 할 것이고 기왕이면 내가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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