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극한직업이 넷플릭스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당시 개봉 당시 커다란 이변으로 여겨졌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는 다시 '극한직업'의 흥행이라는 이변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실 처음 영화의 제목인 '극한직업'을 들었을 때 떠올렸던 것은 다른 포맷의 콘텐츠들이었습니다.
1. EBS 극한직업
나의 애청 프로입니다. 집에서 와이프가 나와 아이들에게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TV프로 중에 정말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방영분은 '대왕문어 잡이'편이었습니다. 항아리를 바다에 넣기만 하면 문어가 그 안에 쏙 들어가 버린다는 감탄과 허탈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던 그 방송입니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직업들이 방영되었습니다. 홈페이지 다시 보기의 가장 오래된 방영분이 2008년 2월 26일 조기잡이 1 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은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EBS 극한직업 홈페이지에 방송의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특히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에 밑줄을 확 긋고 싶습니다.
2 SNL 극한직업
다음은 SNL 극한직업인데, 사실 이게 EBS 극한직업 패러디의 원조격입니다. 요즘에는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겟습니다. 개인적으로 개그맨이면서 작가인 유병재가 SNL에 나왔던 때가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슬기도 참 괜찮았는습니다. 문희준 매니저, 시크릿 매니저 등 당시 알기 어려운 연예인 매니저들의 어려움을 희극화 했었습니다. 유병재가 고통을 당할 때마다 시청자는 즐거움을 느꼈으니 가학 코미디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나오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방송의 원조 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영화 극한직업
배우 류승룡, 이하늬 등이 주연하는 코미디 영화 제목이 극한직업입니다. 마약단속반인 형사팀이 잠복을 위해 치킨집을 인수했는데 맛집이 되는 바람에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형사가 극한직업이야"라고 말하는 듯싶었는데 예고편을 보고 나면 "치킨집 사장이 극한직업이야"가 되었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러면 깡패가 극한직업인 건가"로 평이 바뀌게 됩니다. 개봉당시 영화가 설 연휴에 700만을 찍길래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1000만 그리고 1500만 가까이까지 올라갔었습니다. 관객 1500만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대단한 것이냐 하면 무려 역대 영화 순위 2위를 찍었던 기록이었습니다. 국뽕이라는 소릴 듣던 영화 '명량' 다음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4. 흥행의 이유
작년 말 다양한 콘텐츠 분야 업계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화 분야 현업에 계신 분이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했었는데 불과 한두 달 사이에 그보다 더 큰 의외의 일이 생겨났으니 재미있지 않은가요?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 겹쳤다고 말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하던 시기 겨울을 겨냥하여 개봉했던 영화들이 마약왕(18.12.19 개봉), PMC:더 벙커(18.12.26) 등인데 성적이 좋지 않았고 나름 설 연휴 시기에 가족들과 가볍게 즐기기에 좋은 영화인 극한직업이 나올 때 즈음에 큰 경쟁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먼저 배우들의 연기를 인기 비결로 들 수 있는데, 극한직업에 참여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상당히 등장합니다. 류승룡(고반장)은 진지한 연기든 코믹한 연기든 잘하는 걸로 알고 있고, 신하균(이무배)은 사실 JSA 때 너무 연기를 잘해서 진작에 더 뜰 줄 알았는데 안 뜬 게 이상한 배우고, 진선규(마형사)는 늦게 빛을 보기는 했으니 범죄도시로 청룡영화제에서 조연상을 받은 배우입니다. 서장인 김의성도 그렇고, 이동휘(영호)나 이하늬(장형사)도 매력적이다. 류승룡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 문소리도 사실 연기는 잘하는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좋은 배우 모아 놨다고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욕을 먹는 리얼, 인랑만 해도 투자된 돈이 얼마이며, 배우진들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인랑만 해도 무려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입니다.)
그러면 결국 감독이 훌륭했던 것일까요? 참고로 감독 이병헌은 배우 이병헌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이병헌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다양한 작품들이 보입니다. 일단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 레슬러(2017, 평 4.88, 코미디), 바람바람바람(2017, 평 6.11, 코미디), 긍정이 체질(2016, 평 9.23, 드라마), 스물(2014, 평 7.61, 드라마, 코미디), 출출한 여자(2013, 평 8.08, 드라마, 코미디), 힘내세요 병헌씨(2012, 평 8.62, 드라마, 코미디) 등인데 다 코미디물입니다.
다음으로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들도 상당히 눈에 띕니다. 긍정이 체질(2016, 평 9.23, 드라마), 스물(2014, 평 7.61, 드라마, 코미디), 오늘의 연예(2014, 6.65, 코미디), 출출한 여자(2013, 평 8.08, 드라마, 코미디), 힘내세요 병헌씨(2012, 평 8.62, 드라마, 코미디), 냄새는 난다(2009, 9.38, 코미디)에 추가로 네버엔딩스토리(2012, 7.41, 원작자) 등이다. 각본을 잘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각색으로 참여한 작품도 상당히 많은데 각색이란 다른 매체의 작품으로부터 영화 모티브와 영화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이끌어내는 작업입니다. 다시 말해 원작을 영화화하는 작업입니다. 극한직업, 레슬러, 바람바람바람, 긍정이 체질, 타짜-신의 손, 써니, 과속스캔들 등에 각색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병헌 감독은 코미디 장르를 오랫동안 한 사람이고, 글 솜씨도 되는 데다가 편집과 영화적 상상력도 좀 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생으로 2008년 과속스캔들 각색이 최초 필모그래피로 등록되어 있으니 최소 영화판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고 10년 이상을 버틴 40대 초반 베테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이병헌 감독은 왜 코미디물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합니. “옛날부터 코미디라는 장르를 보는 것도, 구상하는 것도 좋아했다. 한창 습작을 많이 했던 시절에는 호러물을 써보기도 했는데, 나랑은 절대 안 맞더라. 하루 종일 무서운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게 쉽지 않더라. 내가 선택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게 캐릭터와 대사 정도다. 나는 달인이 아니다. 작업할 때는 무식하게 계속 수정하면서 작업한다.”
참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786273&memberNo=43165078&vType=VERTICAL
적성에도 맞고 성실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시놉시스는 그리 재미있지 않은 내용입니다. 마약단속반이 잠복근무 하다가 범인을 놓쳤는데, 우연히 다시 연결이 되어서 몇 명이서 전부 일망타진한다는 좀 어이없는 스토리입니다. 저에게 그런 시놉시스로 영화를 만들라고 했으면 그렇게 재미있게 만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련하고 경험 많으며 성실한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스토리가 재미있고 연결이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각색의 힘인 것이죠. 어색하지 않게 연결하는 코미디적 감각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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