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나친 의존은 금물
그제 어디를 가야 했는데 버스를 타고 가려다가 걸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가 중간에 버스를 타기로 했어. 왜냐하면 요즘 춥기도 하니 운동하기도 어렵고 시간을 따로 빼기가 어려워서(너도 시간내기 어려우면 이렇게 해 보길 바란다.
버스를 타고 어디 내려서 걸어오던지). 30분쯤 걷다가 약속 시간을 넘길 것 같아서 중간에 처음 타는 버스를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옆의 아주머니한테 여기가 광명역 앞이냐고 묻더라고. 그 아주머니는 확실하게 여기라고 이야기를 하셨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거기가 광명역이 아니었거든. 다만 나도 그 버스는 처음 타는 것이라 확실하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지.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내리고 세 정거장 지나서가 광명역이더라고.
그것 보면서 와 역시 남을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 결국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하나 하나 확인하고 해결해 나가야지 타인을 믿고 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지. 종교 역시 마찬가지. 종교의 순기능은 이기심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있지. 하지만 지나치게 종교에 의존하게 만들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속는 사람이 자신만 따르도록, 자기 외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잖아.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스스로 바로 서려고 하고 바르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다.
바람에 힘없이 눕는 들풀도 가끔씩은 바로 서는데, 하물며 사람이 주변 환경에,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 저리 끌려다니기만 할 리는 없겠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2. 생존 그 다음 문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가 싶고, 일단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또한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존과 행복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사람은 사실 그다지 많지가 않아.
정말로 운이 좋아서 날 때부터 생존과 행복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겠지. 행복감도 일종의 결핍 욕구여서 부족하면 일단 간절히 추구하지만 일단 충족되면 삶에서 행복 추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고 한다.
마치 배고프면 밥을 찾지만 배가 부르면 다른 것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삶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던 생존과 행복 추구의 문제가 해결되면 비로소 ‘내 인생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뭐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지.
그러면서 평소 잊고 지냈던 인생의 유한함이 커다란 비중으로 다가오게 된다고 한다. 삶은 한시적이어서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기 마련이고, 그래서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진정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거지. 그러면 ‘이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삶의 마지막 날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남게 되고, 이전에 작은 일에 아웅다웅하거나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던 삶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게 된다고 한다.
나는 미래의 너와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성장하기를 바래. 그렇게 되면 그때 과거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며 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힘겨워하고 어려워하며 살았을까 웃으며 이야기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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